부족전쟁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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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세계의 문서를 작성하기 전에 고백할 내용이 있다. 당시 필자는 살아가는이유로 플레이를 원치 않았다. 한계를 겪었고, 더 이상 한계에 부딛혀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계정을 만들어 플레이 했었는데, 그 닉네임이 '조선은단' 이었다. 아이디의 유래는 집에 있는 고x은단 비타민을 보고, 적당히 꼬아 만들었다. 큰 의미는 없었다.

은둔자가 되어

필자가 20세계를 시작한 것은, 필자의 오랜 동지인 kimdh3326(이하 '킴드')의 20세계 시작을 알리는 글에서 비롯하였다. 필자는 더 이상 부족전쟁을 하드코어하게 할 마음이 없었지만, 적당히 방어 마을을 만들어 방병지원 정도라면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수라장으로 바뀐 20세계에 산책하는 마음으로, 킴드가 속한 아샤스 연방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나의 정체는 킴드에게만 알렸다. 나중가면 다른 부족원들에게도 암시할만한 글을 올리긴 했지만.)

절실한 바람이 기적을 만들다

하지만 필자는 부족 고르는 운이 없는지, 아샤스는 초창기부터 큰 불운을 만난다.

20세계에 접어들며, 더 이상 부족전쟁은 구 세계에서 연상되는 '극초반 눈치싸움 및 세력간 격전을 통한 방위 통합전' 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모했다. 단 1주일만에 자원구입을 통해 스커드급 공병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수 십명이 소속된 연방이 현질과 적절한 방병지원을 받은 유저 한 명을 견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것은 아샤스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특히 현질 유저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동그라미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발발한 전쟁에서 아샤스 연방은 연전연패하였다. 일반적으로 한다면 창검셋 300기도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그라미의 족장 Iiche가 현질로 만든, 강력한 스커드급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샤스의 전투 결과 게시판은 패배의 연속이었고, 방병 지원 요청 게시판은 구원 요청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 족장 Iiche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았던 유저는 그의 지척에 있던 진리였다. 진리에 대한 Iiche의 집착은 가히 '왜곡된 집착'이라 해도 될 정도였는데, 진리는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도저히 스카웃 할 이유가 없는 평범한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공격을 하여 건물을 파괴하는 동시에 메일을 보내서 지속적으로 회유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학점 같은 사적인 메일을 보내곤 했다. 공격을 할 것이면 그냥 공격만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친하게 지내면 될 뿐인데도. 지금 생각 해 보면,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은 왜곡된 욕구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튼 Iiche의 공격으로 인해 진리는 성장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진리가 올리는 로그 하나하나에 부족의 사기가 떨어져감이 느껴졌고, 그럼에도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한 편으로는 벌어질대로 벌어진 윤리도와 Iiche의 방심을 이용해 Iiche의 스커드를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리고 창검이 500셋과 궁병 소수가 모일 무렵, 필자는 전 부족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기억한다.

'지금 우리 부족은 동그라미의 공세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고, 특히 Iiche는 진리에 대해 지속적인 공격을 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격의 성공으로 Iiche는 방심하고 있으며, 윤리도 차이가 커서 방어하는 우리측에 유리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의 총력을 모으면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방어에 성공한다면, 모든 부족원은 Iiche의 공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반격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의 힘을 보여주자. 내가 먼저 창검500셋 및 소수의 궁병을 지원하겠다. 이것은 나의 모든 방어병력이다. 여러분들도 oo월 oo일 oo시까지 보낼 수 있는 방어병력을 모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에 상당수의 부족원이 호응하였는지, 진리의 마을에 방어병력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Iiche의 공격이 감행되었다.

모인 방어병력, 그리고 예측되는 Iiche의 공병을 토대로 한 시뮬레이션에서, 방병이 전멸하고 공병이 80~90% 가량 죽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공격병력을 대부분 소진시켜 Iiche를 당황시킨다면 어느정도 공격이 위축 될 것이니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단톡에 있는 부족원들을 위로하는 가운데, 1초 1초 공격 시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당시 부족원들의 관심은 방어가 성공하느냐보다, 완전 방어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Iiche의 공병을 얼마만큼 소진했느냐였다.

하지만 정말 우연히도, 기적이 벌어졌다.

내가 보낸 지원병력의 로그에 '빨간불' 이 아닌 '노란불'이 떴다. 방어에 성공 한 것이다. (나중에 로그를 분석 해 보니, 방어자 행운이 우리측에 정말 유리하게 떴었고 Iiche의 공병 증가가 예측보다 적었었다.)

단톡의 모든 인원들은 환호했다.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방어전을 성공 한 것이다. 이는 아샤스를 괴롭혔던 Iiche가 당분간 우리 부족원에 대한 공세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Iiche의 주장에 따르면) 10만원 어치의 프리미엄 포인트로 만든 스커드 미사일을 없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연방 설립 이후 계속되는 패배에 별 다른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던 드래곤라자 연방 연방장이던 길시언님 역시 함께 환호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살려, 동그라미에 대한 공세도 선언하였다.

필자가 단 4명뿐인 연방 수뇌부 단톡에 초대된 것도 이 시기였다.

백의종군과 좌절

드래곤라자 연방의 단톡에는 연방장 길시언님, 부연방장 정력좀비님, 그리고 공세를 담당한 그대미워하자님, 그리고 방어를 담당한 필자가 있었다. 다만 방어담당이라는 것은 수뇌부 단톡에서나 형용되던 것이고, 연방 내에서 필자는 어떠한 직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 필자가 제안한 전략은 아래와 같았다. 1. 남서방면을 남북으로 나누어, 북쪽은 아샤스, 남쪽은 에델브로이 부족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2. 북쪽의 아샤스는 공격병력을 뽑아 공세를 계획한다. 3. 남쪽의 에델브로이는 동그라미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며, 북부의 유저 중 몇 명이 에델브로이 부족에 가입하고, 방병지원을 한다. 4. 진리에 대한 방어는 아샤스 부족원이 십시일반 방어병력을 파견하여 지킨다.

그리고 필자는 아샤스 연방의 아카데미이자, 남쪽 방면의 에델브로이 부족 족장으로 옮길 것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군사쪽으로 큰 재능이 없었지만, 지연전은 그나마 나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델브로이의 지연전을 이끄는 것이 가장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아샤스에 잔류하는 진리유저에 대한 방어는, 아샤스 부족원이 십시일반하여 소수의 방어병력을 고정 배치하면 문제 없었다. 방어병력 붙박이는 전략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연방장 길시언은 필자가 아샤스에 계속 남아서, 속칭 '진리 방어전'을 계속 수행하기 바랬다. 이 시점에서 '내가 살아가는이유고, 이러이러해서 에델브로이에 가고 싶다' 라고 했으면 에델브로이로 옮겨 지연전을 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위에도 언급했듯, 필자는 더 이상 한계에 부딛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방병지원이나 하며 유유자적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길시언의 의견에 따라, 진리 유저를 포함한 아샤스 부족의 방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예측대로, 몇 일 간은 동그라미 부족의 공격이 잠잠해졌다. 물론 20서버는 자원구매 및 서버속도가 활성화 된 서버였고, Iiche의 공병 생산 시설이 완성 된 상황에서 스커드급 공병을 회복하는데 3일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하여 최전선 - 진리 - 에 대한 방어를 공고히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한 편 그대미워하자님이 이끄는 공세 역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었다. 아샤스와 동그라미가 대등하게 싸웠던 시기는 아마 이 시기가 유일했을 것이다. 마치 초한지의 형양 · 성고 전역처럼, 아샤스의 전방인 진리와 동그라미의 족장 liche 사이에서 많은 교전, 신경전, 외교전, 심리전이 동반되고 있었다.

이 때 동그라미에서 휴전 제의가 왔었는데, 당시 분위기에 고무되었던 단톡방 부족원들은 이에 반대하고 계속 전쟁을 수행할 것을 주장하자는 결론을 냈다. 생각 해 보면 아샤스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필자는 당시 분위기에 젖은 부족원들을 말리지 않았다. 조용히 플레이 하고 싶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적극적으로 휴전을 적극 찬성하지 않아 부족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넣은 책임은 짊어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측보다 조금 늦은 1주일이 조금 넘은 시간에, 동그라미의 역공이 감행되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동그라미의 역공은 부족원 전체를 향하였다. 부족원 전체에게 공격을 감행 한 것이다. 다만 눈꼽만큼의 전략적 판단이 가능하다면 이 공격이 '훼이크' 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이었고, 만약 진짜 공격이라 가정하더라도 불과 건물이 파괴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오히려 공격병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니, 전선 전체를 놓고 봤을때에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처음 보고를 받았을때는 '하다하다 안되니 저런 말도 안되는 공격도 하는구나' 싶었다.

필자는 1세계 이래부터 대부분을 중소부족에서 플레이 했다. 대부족에 비해 중소부족에는 다양한 수준의 부족원들이 모여 있고, 수년간 다양한 사례를 봐왔다. 하지만 그러한 부족원을 다독이고 독려하여 부족에 도움이 되는 유저로 키우는 것이 필자가 했던 일이고,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아샤스 부족원들의 반응은, 필자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반응의 연속이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지만, 그 사례들을 조금 꺼내보고자 한다. (훼이크 공격이 뻔한 상황임을 상기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1. 공격이 오기 때문에 주요거점을 포함한 방어병력을 모두 회군시킨다고 하는 유저. (문제는 회군시킨 방어병력이 공격보다 늦게 도착함) 2. 방어병력을 보내지 않으면 부족을 탈퇴하겠다고 협박하는 유저 3. 그리고 진짜로 부족을 탈퇴한 유저 4. 공격이 오기 때문에 일단 방어병력을 받을 수 있는 중립부족으로 옮기겠다고 하는 유저(당시 후방에 '뮤즈'라고 하는 표면적으로 중립부족, 실질적으로 드래곤라자 연방의 괴뢰부족이 있었다.) 5. 수 차례 훼이크임을 설명했음에도 하루종일 수십차례 확인을 받은 유저 6. 지원 병력 일부 회군을 몰라서 지원병력을 모두 회군시킨 유저

일전에 드래곤라자 2대 연방장을 역임한 님들자비점은 이러한 연방 유저 대부분을 '발암 유저'으로 평가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필자는 아직 암에 걸리지 않았고, 님들자비점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암에 걸리셨다면 문병을 가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는 부적절하다. 하지만 필자가 드래곤라자의 대부분의 연방원을 평가하자면, '오합지졸'로 정의하고 싶다. 전선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낸 방어 책임자가 '훼이크 공격이니 진정하라'고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자의 말 조차 신뢰하지 않는 부족원을 과연 같은 부족원이라 할 수 있을까. 전선에서는 후방을 위해 마을을 뺏기고 파괴당하는 유저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기껏 해 봐야 '건물 부서지는 정도의 가벼운 피해' 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유저들을 감당할 수 있는 오피서를 부족전쟁 역사상 찾을 수 있을까. 여담으로, 당시 필자는 모든 방어병력을 전방으로 파견 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방어병력을 전혀 배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적당히 들어주면 진정하겠다 생각했지만 말도 안되는 불안감은 역병처럼 퍼져, 결과적으로 귀중한 방어병력들이 모두 분산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냥 몇 명 탈퇴하더라도, 욕 좀 먹더라도 기존 방침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동그라미의 목표는, 필자가 예측한대로 진리에 대한 총공격이었다. 총공세를 직접 확인한 후 방병 있으면 보내라고 계속 절박하게 전체메일을 돌렸는데, 아마 부족 내에 스파이 계정이 있었다면 꽤나 재미있게 상황을 관전하셨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최전선인 진리님의 마을은 점령당했다. 드래곤라자라는 팔랑크스(Phalanx)가 방패를 빼앗긴 순간, 드래곤라자에게 남은 것은 그냥 긴 창 하나 든 평범한 남자들 뿐이었다.

13세계에서 느꼈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다시 눈 앞에 다가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13세계의 장벽은 혼자서 절대 넘을 수 없는 무언가였다면, 20세계의 장벽은 13세계보다는 다소 낮은 장벽이었지만 내 발목이 거대한 늪에 빠져버렸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필자는 같은 부족원들을 비방하여 필자의 명예를 챙기고자 할 생각은 없지만, 이정도면 궤가 달랐다.

그리하여, 1주일 앞으로 자격증 시험을 위해 시팅을 맡겼다. 간부를 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샤스의 마지막 '충신'이 되다

1주일이 지나자 부족은 꽤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첫번째로, 연방장이 길시언님에서 님들자비점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번째로, 아샤스의 전선은 상당히 후퇴하여, 남서 북부의 1/3 지점까지 후퇴하였다. 세번째로, 아샤스의 영역 한 가운데에 거의 회광상태로 있던 BiteOnTheBullet님이 급성장하여 아샤스의 내부영역에 혼란이 발생하였다.

거기다가 그대미워하자님이 현게를 탄 후, 더 이상 아샤스에는 공세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전력도 없었다. 님들자비점님이 전부족원 시팅을 하고, 외교적 접촉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하셨지만, 역부족이었다. 님들자비점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시점에서는 1세계부터 23세계를 통틀어 부족전쟁의 어느 유저가 오더라도 아샤스를 소생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불과 마을 3개의, 그리고 소수 동줍 기병을 제외하고 방어병력만 쉴틈 없이 뽑아대던 필자가 부족 랭킹 1위였을 정도로 당시 아샤스의 기반은 완벽히 붕괴되어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동그라미, 내부적으로는 BiteOnTheBullet님으로 인해 하루하루 세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한 때 먼 일처럼 느껴졌던 동그라미의 공세가 목전에 다가오자 부족을 이탈하는 사람도 많았다. 개중에는 방병을 안 보내주면 부족을 탈퇴하니 마니하여 아까운 방병을 쪼개드렸던 유저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필자가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것은 방병 마을을 만들어 같은 부족원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이 시점에서, 부족에서 소행성급 공격을 자력으로 방어할 수 있는 유저는 필자 뿐이었다. 덕분에 지척에 있는 BiteOnTheBullet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쉴틈 없이 방어병력을 지원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그 누가 와도 아샤스의 붕괴는 막을 수 없었다.

야속하게도 외부 정세 역시 아샤스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북서의 동맹이던 싸울아비에 대항하는 시나브로연방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세피로스일당의 시나브로연방 이적으로 세력비가 역전되고 만다. 아샤스로서는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언덕이 사라진 셈이었다.

'아샤스와 싸울아비가 함께 망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각오를 다지던 찰나에, 필자에게 두 개의 초대가 왔다. 세피로스의 초대, 그리고 싸울아비로의 초대였다.

세피로스내각총리대신님이 약간 연상되는, 정략적인 유저였다. 그리고 본인의 세력도 강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유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세피로스님은 서버 초반부부터 필자와 어느정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었는데, 세피로스님의 인간성이 그닥 좋지 않다고 들어서 조금은 꺼려하면서도 (부족을 위해)연락이 오면 답장정도는 하는 사이었다. 그러한 세피로스님이 싸울아비에서 시나브로연방으로 이적할 무렵, 초대와 함께 '언제까지 가입을 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싸울아비로의 초대는 연방장인 님들자비점님과 싸울아비 부족간의 협정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아샤스의 최북단 - 남서와 북서 접경 - 에는 그나마 최소한의 개념을 가지고 전력을 비축해둔 유저들이 있었다. 훗날 님들자비점님의 회상에 따르면, 그러한 부족원 8명을 싸울아비에 초대하게 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아샤스의 멸망은 시간문제였다. 거기다가 필자 역시 인간인지라 강한 부족에 붙어서, 유유자적하면서, '승자'로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강한 부족에 가입한다면 어처구니 없는 유저들과 얽혀서 고민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때 문득 생각난 것이 이 문구들였다. (약간의 윤문 있음)

> '게임에서조차 강자에게 빌붙어서 하고 싶느냐.'

> '강대부족들이 좌지우지 하는 세계에서도 작은 희망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로젠다로를 만든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지금까지 부족전쟁을 한 이유는 중소부족인 로젠다로에 가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한 부족에 가입했다면, 필자는 틀림 없이 '강함에 대한 필자의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게임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부족전쟁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들은 강함을 갈구하고 추구 할 수 밖에 없는 게임에서, 허황 될 정도로 순수했던 이상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었다. 그렇게 순수한 분들의 이상이 꺾이는 것을 보면서, 다른 곳, 다른 시간에서나마 '이 사람들의 이상을 반드시 내가 이뤄보겠다'는 생각이, 필자가 지금까지 부족전쟁을 해 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 뜻을 꺾을 수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구 세계도 아니고, 4개 대륙 수준으로 쪼그라져버린 작은 세계에서 강한 부족에 가입하는 기회 따위와 비교하는 것은, 필자의 신념, 필자를 믿어 준 수백, 수천명의 유저들, 필자와 함께 부족전쟁을 해 주신 많은 동료분들께 실례일 것이다.

그렇게 세피로스님이 제안한 최후 통첩의 시간이 다가왔고, 정말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공격을 끊은 사람은 한 때 아샤스에 있었던, 그리고 몇 번 정도 메일을 주고 받았던 킴킴풉쉬님이었다.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거지만, 속으로 들었던 생각은 '메일로는 그렇게 친한척을 하더니, 그동안 이 마을 먹고 싶어서 어떻게 견뎠을까.' 였다. 그런데 필자를 너무 과소평가했던지, 풀방+a 마을에 윤리도 72%의 소행성을 부딛혔다. 당연히 필자의 마을에는 흠집만 났다. 하지만 물량차이가 있다보니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아샤스의 방어결과 게시판에 로그를 올렸다. '쉽게 막긴 했지만 곧 먹힐 것이고, 앞으로 방어병력 지원은 어려울 것이다' 는 의미를 담아서.

그런데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방어병력을 보내라는 말 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부족원들이 십시일반 방어병력을 보내 준 것이다. 물론 방병의 규모는 창검 4000기 가량으로, 한 때 한 방위의 절반을 점유한 부족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규모였지만, 그걸로도 좋았다. 필자는 만족했다. '신념을 꺾는 것 보다는, 이런 어설프고 순수한 부족원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 것이 나 답겠구나.' 싶었다.

공격은 시시각각 늘어났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남쪽에서도 BiteOnTheBullet님이 필자에게 공세를 감행 해 오기 시작했다. 방어병력을 지원 해 준 유저분들에게 '지원 해 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아마 보내주신 병력은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계속 지원 해 주신다면 끝까지 싸우겠지만, 방어병력이 아까운 분들은 언제까지 회군 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회군을 하신 분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킴킴풉쉬님에게 마을을 주기는 싫어서 BiteOnTheBullet님에게 '차라리 님이 제 마을들을 다 노블 해 달라' 라고 메일을 보냈었다. 그런데 사전에 계약된 것이 있는지, 본인은 남쪽 두 마을만 먹겠다고 이야기 하셨다.

마지막으로 킴킴풉쉬님에게는 '윤리도 72% 풀방 마을에 소행성 한 방 부딛혀 봐야 무슨 소용인가' 라고 조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답장은 필자의 동맹이었던(그리고 킴킴풉쉬님의 부족과는 적이었던)싸울아비의 봇-샹크스님에게 왔다. 킴킴풉쉬님을 조롱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선 본인의 적부족원을 옹호하기 위해 본인의 동맹부족원에게 일갈하는 것이 황당했고, 두번째로는 조롱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필자 마을에 눈이 반쯤 돌아간) 저 분이 공격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동맹부족원이 지원 할 생각은 커녕(서버 시스템상 동맹 부족원이 방어병력을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적 부족원에게 그냥 얌전히 먹혀라'는 것인데, 황당해서 몇 마디를 했더니 본인 프로필을 필자 본인은 실력도 있고 잘났고, 필자는 실력도 없으면서 디스만 한다는 식으로 장문의 시조를 작성 해 두셨다. 국어국문학과를 다니셨다보다.

맘 같아서는 싸울아비의 초대를 받아들여서 '같은 부족원 되었는데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싶었지만, 이미 마무리를 하자고 마음을 굳힌 상태라서 그냥 내버려뒀다. 개인적으로 현실이 아닌 게임에서 선민의식이나 의지드립, 실력드립을 치는 것은 굉장히 우습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남서련 출신이기 때문에 잘났으니 로젠다로 부족원을 '척살' 하겠다'고 하던, 아이디는 기억나지 않는 1세계 남서련 71대륙장 생각이 나서 좀 귀엽기도 했다.

이쯤되면 싸울아비와의 외교도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 동줍용 공병을 나눠서 봇-샹크스님에게 공세를 감행했다. 풀방마을에 있는 공격병력이야 보잘것 없는 것이 뻔한거지만, 당황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굉장히 서투른 대처를 보였다. 필자보다 몇 배는 많은 마을과 점수를 보유했지만 병력도 보잘것 없었다. 나중에는 각성하셨는지 20세계에서 크게 활약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봇-샹크스님은 공격에 서툰 필자조차도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쉽게 공략했을 것으로 판단되었을 정도였다. 결국 노블당해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여튼, 공격 한 발 한 발이 올 때마다 방어병력은 계속 줄어들어갔다. 본 마을을 제외한 멀티들은 이미 BiteOnTheBullet님에 의해 충성도가 깎여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약 여섯~일곱발 가량의 소행성을 버틴 필자의 본 마을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샤스는 마을 함락 직전에 해체되었지만.) 아샤스 최후의 요새는 이렇게 함락 되었다.

푸른하늘(현자의 돌) 가입과 그 이후

20세계에서 필자가 하던 일은 아샤스에 방병을 공급하는 일과, 역사 연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아샤스가 멸망하여 더 이상 방병은 공급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역사 연표를 작성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역사 연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에, 쉽게 가입할 수 있던 부족을 찾던 중 북동의 중소부족이었던 푸른하늘에 가입하였다.

부족 자체는 특별히 기술할 내용이 없다. 오피서들도 초보분들이셨고, 푸른하늘이 있던 북동 지역은 세계 패권 부족인 마블이 점유하고 있어서, 세력을 키우고 싶어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블에 의해 세력권이 흡수되겠구나 하는 예측은 가능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쪽 부족에서도 오피서가 필요하니 한두번 정도 제안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 간부는 하고 싶지 않았고 해도 국면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사양했다. 다만 갈 곳 없던 철새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은 전하고 싶다.

그렇게 연표 작성에 집중하다가, 마블 부족의 승리로 20세계의 마무리를 보는 것으로 플레이를 마치게 되었다. 이후에도 21세계, 22세계 리포트 작성도 했지만, 필자가 직접 플레이한 것은 이 세계가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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