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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_Pucelle_Martyr's_March_(Extended)

La Pucelle Martyr's March (Extended)

로젠다로 (ROGENDARO)

로젠다로




  • A Martyr's March 라퓌셀 : 빛의 성녀 전설 (2002)의 OST 입니다. 제목 그대로 이 때의 플레이는 벌여놓은 판을 수습하기 위한 '순교자'가 되기 위한 플레이였던 것 같습니다.
  • 여담이지만 라퓌셀 : 빛의 성녀 전설는 우리나라 ps2 게임 중 가장 먼저 한국어화 되어 출시 된 게임이고, 디스가이아 시리즈의 원조격인 게임이기도 합니다. 기념비적인 작품에 게임성도 (당시 기준으로)는 준수한편이라, 한 번쯤 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다시 결의하다

그리고 약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당시 공약이었던 7.4.7을 비꼬아서 게임 7개 클리어, 4곳 여행, 책 7권 탐독을 목표로 방학생활을 거의 마친 2009년 9월 즈음, 문득 내가 방치 해 버린 부족전쟁이 떠올랐다. 프로이센 연방은 어떻게 되었을지, 과연 무능과 무책임의 결정체였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분은 교체가 되었는지, 무엇보다 바이에른은 어떻게 되었는지. 머릿속에 문득 바이에른이 떠오른 순간, '아마 망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좋아도 53대륙의 전방지구는 사실상 전멸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만이 들었다. 바이에른의 실패는 전적으로 필자의 죄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이에른의 창설자니까' 라는 부심 돋는 생각이 아니라, '실패를 했더라도 그 자리에서 실패를 봐야했는데, 도망쳐놓은 주제에 이제와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바라보는 무책임함'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하지만 아예 눈을 돌리는 것 보다는, 나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눈으로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예 눈을 돌려버리는 최악의 최악을 피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쉼호흡을 하고, 부족전쟁에 접속한 뒤, 4세계의 부족랭킹창을 보았다. 그리고 보나마나 1페이지에는 없을테니 자동적으로 2페이지로 부족을 넘기려는 순간, 주변시야에 익숙한 이름이, 시신경을 살짝 스쳐갔다.

바이에른

필자의 예상과 달리 패퇴는 커녕, 1페이지의 말단이긴 하지만, 단일 부족으로 1페이지에 오른 것이다. 나중 일이지만, 필자가 간 뒤 약속이나 한 듯 쓰리디누리님이 접속하지 않았고(에페르샤님의 말을 종합 해 보면 내가 시팅을 맡았던 것이 마지막 순간이었고, 더 이상 접속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2대 총독으로 임명된 ifduk3님의 강력한 방어전으로 영역 확보에 성공, 이후 3대 총독인 에페르샤님이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부족을 성장시켰다고 전해왔다. 또한 외부적으로도 바이에른의 주적 격이었던 FLAG(당시에는 V-crew)에 내분이 발생, 친 미르에서 친 프로이센으로 외교를 180도 선회하여 바이에른으로서는 외교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구가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까지 이끌어오는데, 남은 분들의 노고가 얼마만큼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려오고, 그리고 내가 만약 이것을 보지 않았다면, 내 마음속에 바이에른은 멸망한 부족으로 남아있었을까를 생각하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바이에른에는 더 이상 필자가 필요하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2페이지로 넘어오면서,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1페이지느냐 2페이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페이지의 하단에 마찬가지로 익숙한 부족명이 보였다.

로젠다로

순간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젠다로는 합병으로 이미 '없어진 부족'이 된 상황이었다. 1세계 로젠다로 출신이든, 아니든 이제 그런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당면한 목표인 미르와의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부족명을 사용하는 것인가. 혹은 사칭이 아닌가 (1세계 때에도 로젠다로를 사칭한 부족이 있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장본인이 누군지 확인 할 필요가 있었고, '로젠다로' 부족의 소개 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필자는 납득 해 버렸다.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족장은 1세계 때 부터 익숙한 kimdh3326(이하 '킴드'), 그리고 분명히 1세계 때 낮익은 아이디가 몇 개 보였다.

그렇다. 필자가 꾸어서는 안 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다 깨어났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꿈의 파편을 잡고 있었다. 만약 필자가 '로젠다로'의 부흥을 꿈꾸지 않았다면 그들은 꿈 꿀 일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필자와 달리,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서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누군가에 의해 깨어지더라도, 다시 꿈꿀 뿐으로 보였다. 바이에른의 그분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꿈에서 깨어나게 할 필자의 책임이 있었다.

가장 먼저 킴드에게 접선을 했다. 의심도 없이 바로 환영을 해 줬다. 그리고 다시 필자는 '로젠다로' 부족원이 된다. 하지만 당시 '로젠다로'의 분위기는 거의 폐가 수준이었다. 킴드도 당시 고딩이고, 오피셔라는 것에 대한 틀이 잘 잡혀있지 않았다. 필자는 그나마 대륙장이라도 해 봤지만 킴드는 초대 이외에 행정을 담당 해 본적이 없었다. 초대 권한이 모든 부족원에게 주어져서, 일단 초대로 세력을 불리자는 마인드였을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부족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초대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 군무, 내무 전반에 걸쳐 구축된 것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프로이센 연방과는 외교가 체결되어 있긴 했는데, 이것도 산하 부족마다 외교관계 차이가 상이하여 이것을 프로이센 연방과 외교를 했다고 볼 수 있나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킴드의 요청 반, 필자의 요청 반으로 필자가 로젠다로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 부족원에게 주어진 초대 권한을 모두 회수해서, 몇 명의 유능한 유저들만 초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 부족의 존속을 위해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센과의 외교 관계 공식화를 위해 '외무장관' 이라는 자리를 받아서 부족과 교섭을 했다. 사실 9월 초부터 프로이센 연방은 반쯤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대변하듯 외교 창구가 다 달랐고, '로젠다로'에 대한 외교도 제각각이었다. (헤센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나마 킴드가 이전에 소속되어 있던 바이에른과는 동맹이었지만 하노버와는 nap, 프로이센과는 무외교 관계였고 특히나 프로이센쪽은 '로젠다로' 라는 이름에 대해서 굉장히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었고, 프로이센 내각의 수반이었던 MIZZ님도 완곡하지만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통합정신 훼손' 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부족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프로이센과의 외교는 힘든 셈이 되었다. 물론 바이에른과는 어찌어찌 할 수도 있었겠지만, 바이에른과의 외교만으로는 안전한 영역이 거의 없던 실정이었다.

다만 '로젠다로' 라는 이름을 덮고 자고 있는 분들을 깨우기에는 좋은 계기이긴 했다. mizz님과 각 부족의 외교담당(coolbee님, rpgcast님 등)과의 협상 결과를 이야기 하고, 부족이름을 변경하지 않으면 외교관계 체결이 어렵다고 이야기 하였다. 킴드가 이를 수용하여 결국 부족명을 바꾼다는 조건 하에 프로이센 연방과의 정식적인 동맹 관계를 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명 변경은 로젠다로+VIP때와 달리 킴드가 독단(?)으로 이름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바로 '비트라이스(Beatrice)'였다. 보통 Beatrice는 베아트리체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비트라이스는 왠지 보크라이스가 생각나서 베아트리체로 읽자고 했는데 킴드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4차 로젠다로는 몇 주일도 되지 않아 '비트라이스' 라는 부족명이 되었고, 프로이센 연방의 외곽 지원을 목적으로 한, 바이에른에 대한 속죄, 그리고 필자의 꿈에 끌려 온 분들을 위한 속죄가 시작되었다.

찻잔속의 폭풍, 미르/토르와의 개전

대충 프로이센과의 외교관계를 정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미르에의 선전포고였다. 2009년 중순 로젠다로/프로이센 때 당했던 원한을 담은, 외교 문서라고도 할 수 없는 미르 디스 글을 철산무정님에게 보내는 것으로 선전포고를 갈음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철산무정님의 부고를 듣고 나서 굉장히 후회했다.)

물론 아무리 미르가 망해가고 있다고 한들, 비트라이스의 전력은 미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전선에 획기적인 영향을 줄 수도 없었겠지만 미르에 선전포고 함으로써 범 프로이센 계열 부족에게 어필하고 싶었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부족이라는 것을' 부족원들에게 각인 시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미르측 마을을 두 개 정도 노블하는 선에서 미르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것을 할까 구상을 할 시간이 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구상을 이야기 하기도 전에 외교관계 해지를 통보 해 온 부족이 있었다. 토르 부족이었다.

토르 부족과의 관계는 로젠다로때 부터 있어왔다. 미르 부족에 쭉쭉 밀리던 시절, 적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 토르의 전신격인 '죽음의세계'와 NAP을 체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미르와는 동맹을 체결하는 등 암묵적으로 미르편을 들던 이 부족에 대해서 끙끙 앓으면서도 밀리는 상황에서 오피셔로서 도움은 못줄망정 적을 하나 더 늘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뒀던 기억이 있었다. 이후에 죽음의세계와 ESSI 연방이 여차저차 해서 로젠다로의 외교를 계승한 프로이센을 믿고 남서 외곽으로 집단 이주를 했고, 필자도 다시 남서 외곽에 위치한 비트라이스에 소속되면서 관계를 다시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필자는 킴드 이외에는 정체를 숨긴 상태에서 게임을 했으니 몰랐을 테고, 알았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혼자서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뿐 아니라 NAP 해지 이유도 황당했다. 우리측 부족원이 토르의 여성 유저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뭐 이것까지는 당연히 우리측 잘못인건 맞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공격을 한 것도, 아니면 공성병기를 대거 동원해서 마을을 박살 낸 것도 아니고 딱 초보자 수준의 '방병 어택' 수준이었다. 부족에서도 사과와 피해 전액 배상을 제안했다. 필요하다면 더 얹어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수 수준이었고, 분명히 사과와 배상도 약속했다. 노블 분쟁이 일어나도 사소한 수준이면 참는게 일반적이고, 공격 한 번 잘못 들어왔다고 부족간 외교가 단절된 사례가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식의 고자세는, 외교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저쪽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토르 연방장이었던 노블레스오블리제님의 발언은 더욱 가관이었다. '힘이 없으면 잡아 먹히는거 아실텐데요 ^^' 였다. 당시 비트라이스가 총 점수 기준으로 토르의 1/4 수준이긴 했지만 '니들은 약하니까 우리가 잡아 먹을꺼야 ㅋㅋㅋ 도시락들아' 식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부족원의 스파이계정으로 토르 부족 게시판을 정탐 한 결과 overdrive님 등 74, 84대륙 소속 유저들이 이 기회에 비트라이스와 외교를 끊자는 식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외교상황에서 먹을 마을이 마땅히 않은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평등한 세상이나 프로이센 연방 등과 외교를 단절하기에는 토르의 세가 미약한 상황이었기에 적절히 만만한 비트라이스의 마을을 공략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여튼, 남서련의 몇몇 무개념 부족원도 저런 비스무리한 말을 하긴 했었지만, 프로이센과의 외교로 연명하는, 토르의 연방장 '따위'에게 저런 소리 듣는것은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미르와의 가짜 전쟁이 아닌, 진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맨 먼저 킴드와 막 구성된 워팀의 간부진들과 상의를 시작했다. 전쟁의 구상은 즉흥적이었지만, 계획은 치밀해야 했다. 특히나 필자가 노렸던 것은 기습 개전이었다. 어려운 구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 해 주셨다. 외교 문제도 고려 되었어야 했지만 외교 문제는 일단 터트린 뒤에 조정 해 나가기로 하였다. 바로 아래에 후술하겠지만 주요부족들과 상의 한다면 아마 '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트라이스는, 4배 큰 토르 연방에 선전포고 하기에 이른다.

기억나는 간부진의 리스트는 이정도였다.

족장 : kimdh3326
내무장관 : 유리카고
외무장관 겸 62-1지방여단장 겸 광역모병관: 진홍의성흔
총사령관 겸 총사령관직할사령부사령관 : 코이오용
51-52 지방여단장 : 라테르리 (나중에 밀크쿠키로 닉을 바꾸신다. 싸울아비 인물열전에도 등장)
73-74-83-84 지방여단장 : 네드베드(?)
광역모병관? : 펠리페 3세

기타 부족 랭킹 1위셨던 사신대행님, 홍일점이었던 류 시아(나중에 '쿠키'로 닉네임 변경. 역시 싸울아비 인물열전 출연)님 등등이 있다. 총사령관직할사령부에 몇몇 분들이나 62-2/72-73-74대륙 여단도 편성이 되었는데 간부분들의 닉네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사령관 아이디가 '네드베드' 정도로 기억하고 있으며, 아이디가 rucy로 시작되는 분은 사회복무요원 기초군사훈련으로 현게를 타셨는데, 훗날 버라이어티의 주요 멤버로 활약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중소부족이다보니 인력이 많이 부족했고, 능력에 맞지 않게 여러 직책을 겸임하다보니 결국 전쟁은 코이오용님이나 라테르리님이 다 하셨다. 필자가 워팀장으로 방어를 담당하였던 62대륙은 토르와 비트라이스 세력이 뒤섞인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 및 외교 업무로 인한 격무로 공세를 계획할 여유도 부족하였고, 공세를 계획하거나 추진할 마땅한 유저도 없었을뿐더러, 열심히 전선에서 활약하지는 못할지언정 마을을 뺏겨서 노블스코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더해져 정말 방어에 급급한 수준이었다. 위에서 여성 유저를 공격하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유저가 62대륙에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하는둥 마는둥 접속을 안하셔서 장기 미접속 명목으로 강제탈퇴 시켰던 기억도 난다.

전쟁 당시 필자가 집중했던 것은 외교였다. 위에 언급했듯, 비트라이스는 프로이센과 외교를 체결 해 두긴 했지만 불안한 정세가 유지되었다. 프로이센이 해체되면서 각 부족의 외교는 독립되었고, 더 이상 각 독립부족은 비트라이스와 외교를 체결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최소한 중립 수준으로 돌려야했고, 결국 필자는 '커밍아웃'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커밍아웃도 나름의 고민은 있었다. 계속 언급했듯 필자는 '도망자'였다. 오히려 책임을 물어서 적대설정을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 프로이센계 부족 분들은 필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 호의는 아마 꽤나 오랫동안 잊기 어려울 정도로. 특히나 프로이센의 경우는 개전을 이유로 비트라이스에 선전포고를 계획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1세계 당시 프로이센의 외교관은 건드려봐님이었고, 그 인연을 바탕으로 외교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외교관으로서 할 수 있는, 전쟁 중에 큰 외교관계의 변동 없이 전쟁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은 조성하였다.

전선 유불리는 지역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위에 언급하였듯, 코이오용님과 라테르리님이 이끄는 51,52대륙 지역에서는 토르의 주요 랭커를 일시에 '순삭' 해 버리며 차근차근 토르 세력을 정리하였다. 62대륙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필자의 전수방어적 전략으로 교착상태에 빠졌으나, Akira님이 토르의 오르니오빌과의 1:1 레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일단 노블 스토어는 유리하게 가져갔다.(나중가서 Akira님은 평등한 세상 부족원에게 전부 노블당해버리지만.) 그 결과 노블 스코어 자체는 33:17 수준으로 전쟁이라 하기에는 민망한 규모였지만, 종전까지 비트라이스는 토르보다 두 배 가량의 노블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유리한 지역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으로 인해 비트라이스는 73,74,83,84 대륙과 같이, 토르 세력이 밀집 해 있는 동시에 비트라이스 세력이 약한 지역을 포기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필자는 해당 지역의 개척을 반대했었다. 해당 지역은 부족의 본 세력이라 할 수 있는 51-52-62-72 대륙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렇다고 본 부족에서 해당 부족까지 행정적 지원을 하거나, 자원/병력적 지원을 넉넉히 할 정도로 여력이 있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당장 구 로젠다로와 단군_로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1세계 50대륙이 다른 대륙과 단절되면서 은하수에 편입되었던 교훈이 있었다. 하지만 초대 권한을 가진 분들이 알음알음 해당 지역까지 초대를 하였고, 그 인원이 애매한 숫자만큼 모인상태에서 개전이 이뤄지면서, 급히 4개 대륙을 묶어 '허술한 워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해당 지역은 토르의 본거지였을 뿐더러, 우리 부족과 무외교 관계였던 평등한 세상의 세력권이었다. 그 덕분에 토르의 공격은 물론, 두 부족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평등한 세상 부족원들의 어부지리를 노린 공세까지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이런 열세에도 불구하고 rucy님의 방어에 힘입어 기대 이상의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rucy님이 사회복무요원 훈련으로 현게를 타면서 상황은 악화일로에 놓였다. 결국 부족에서는 해당 지역의 방어를 포기해야했고, 바이에른이나 천년 신라와 같은 부족으로 이적을 추진했으나 도피가입으로 탈퇴당하면서 대부분의 부족원이 현게를 타거나 토르, 평등한 세상의 부족원에게 노블 당하게 되었다. 어떤말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필자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어찌되었든 비트라이스와 토르는 서로의 강세지역에서, 서로의 약세지역을 공략하며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강세 지역에서 대부분의 부족원을 정리할 즈음, 들려온 것은 바이에른과 한누리와의 재 개전 소식이었다. 사실상 비트라이스의 종주부족이었던 바이에른의 전쟁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바이에른의 우군이었던 토르와의 전쟁을 장기화 하기는 어려웠다. 바이에른-비트라이스-토르 동맹이 연합하여 한누리를 공격할 시점이 된 것이다. 거기다가 당 부족보다 4배 가량 큰 부족과의 전쟁에서 더블스코어를 기록하며 부족원의 전쟁수행능력과 사기를 높였고, 전쟁을 했던 1개월간 비트라이스는 토르의 1/4 규모에서 1/2 규모까지 성장 했다. 51-52-62 대륙 수준의 국소 전선 정도에서는 충분히 바이에른의 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남서 변방에서 벌어진 비트라이스-토르전은 한 달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한누리와의 개전 좌절, 그리고 사라다님과의 만남

토르와의 종전과 같은 휴전을 한 후 필자는 바로 한누리와의 외교관계를 해지하기 위해 족장인 이케작스님과 접촉했다. 당시 비트라이스와 한누리는 nap 협정에서 해지시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있었는데, 이 유예기간을 두고 외교관계를 해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당시 이케작스님은 침착하게 당 부족의 통보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유예기간을 기다리던 중, 필자에게 한통의 메일이 왔다. 외교관계에 대해 문의하고 싶다던 싸울아비의 아카데미, 화 랑 부족의 연락이었다. 순간 아차했다. 당시 싸울아비 연방이 한누리측에 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화 된 것이니까. 아마 우리 부족의 접촉 이후, 한누리와 싸울아비측이 긴밀히 연계하지 않았나하는 추측이 들긴 한다.

여튼 비트라이스에게는 싸울아비의 접촉에 대해 거절할 베짱과 역량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전력 차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비트라이스의 모(母)부족이라 할 수 있는 바이에른 역시 표면상 싸울아비와 동맹인 상황이었기에 토르전처럼 바이에른에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화 랑의 대표로 온 사람은 1세계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사라다님이었다. 달인인 사라다님의 명성답게 회의 초반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역력했다. 예를 들어서 필자에게 '근성은 어찌되었든 유능한 인재' 라는 등등의 립서비스 등등. 보통의 상황에서 사라다님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영광이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와 사라다님은 외교를 하기 위해 앉아있는, 자 부족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여지가 있었다면 나 역시 사라다님에게 어떤 립서비스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 부족간 압도적인 전력차이, 그리고 양자간 역량 차이로 인해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었고, 화 랑 부족의 제안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협정의 결과로 인해

> 비트라이스와 한누리와의 nap 협정 유지

> 비트라이스와 한누리의 nap 기간이 유지되는 동안, 비트라이스와 화 랑의 nap 유지

> 41/42대륙과 51/52대륙을 경계로, 비트라이스와 화 랑 부족간 영역 침입 금지

가 체결되었다. 표면상으로 중소부족인 비트라이스가 화 랑이 nap을 체결하고, 사실상 화 랑이 남서방면으로의 진출을 막는 등등 비트라이스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졌지만 비트라이스로서는 모 부족인 바이에른의 도움을 주기 위해 한누리와의 개전이 금지당한, 화 랑과 한누리가 실리를 챙긴 협정이었다. 하지만 그 표면적 부분의 양보로 인해 화 랑 역시 중소부족에 대해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쌓았으니, 가히 외교의 달인인 사라다님 다웠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 역시, 사라다님의 노련한 외교술에 감탄만 할 수는 없었다. 당장 비트라이스 부족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토르의 주요 랭커들을 일시에 순삭 해 가며 자신감과 전력, 그리고 전의를 불태우던 비트라이스의 부족원들의 공세를 한누리와의 전쟁을 위해 반강제로 중단시킨 상황에서 한누리와의 개전이 좌절된다는건 부족원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가 필자 역시, 화 랑과 한누리의 의도에 그대로 따라줄 정도로 고분고분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 결과로 이어진 것이 주요 부족원들의 바이에른 이적이었다.

그렇게 총사령관인 코이오용님을 포함한 총사령부 직할사령부의 상당부분, 그리고 51-52지방사령부의 인원 일부가 바이에른에 가담했다. 사라다님을 벤치마킹하여, 부족 내 랭킹 1위분'만' 이적을 금지시켜 명분을 만들었다. 당연히 한누리에서는 우리 부족원이 바이에른에 가입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가고 싶겠다는데 어쩌겠나' 식으로 답했다. 한누리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반쯤은 맞는 말, 반쯤은 어쩔 수 없는 말이었다. 전쟁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언젠가 부족을 탈퇴할텐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을 만드는것 보다 차라리 우군인 바이에른쪽으로 숨구멍을 띄워주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누리 전쟁사에서도 언급되어있듯, 바이에른에 있다가 한누리의 공세를 받았던 부족원이 우리 부족에 도피가입을 해 온적이 있었다. 전쟁에서야 이기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못하겠냐만, 개인적으로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우리가 이런다면 분명히 중요한 시점에 우리 역시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족 주류의 의견은 나와 달랐고, 위에 언급했듯 잠재적인 적이었던 한누리를 위한 배려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극적인 반대만 하다가 '씁 어쩔 수 없지' 식으로 부족 내에서 유야무야 넘어갔고, 한누리측의 외교적 접촉이 오자 '나는 반대했는데 부족에서는 이러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 식으로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여러가지가 종합되고, 바이에른-페이트 연합의 활약에 의해 한누리의 52대륙 전선은 붕괴 직전에 이른다. 바이에른 총독을 사퇴하며 바이에른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준지 어언 4개월만에, 조금의 보답을 했다고, 혼자서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서의 상황은 불과 1개 대륙의 국지적인 승리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바이에른, 부족원들을 위한 마지막 외교

사건은 평등한 세상의 마에스트로 연방의 항복으로부터 시작된다. 74-84대륙으로 이어지는, 남동의 강력한 쓰나미에 버텼던 든든한 방파제가 쓰러진 것이다.

마에스트로 연방의 주력 멤버들은 평등한 세상의 전력을 빠르게 흡수 해 갔고, 얼마 되지 않아 평등한 세상은 세계 2차대전 당지 만주국마냥 껍데기만 남게 된다. 평등한 세상이 맺었던 남서방면 부족들과의 외교는 모두 초기화 되었고, 곧 적대 설정이 진행되었다.

마에스트로의 남서 진출은 바이에른-페이트 연합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특히 바이에른의 경우 더욱 문제가 되었는데, 코어 지역에 세력이 집중되어 있던 페이트야 그나마 나았지만, 51대륙에서 부터 구 토르 세력이 분포한 74-84대륙에 걸쳐 광범위한 영역을 점유한 바이에른은 사실상 전 지역이 마에스트로 세력과 접경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비트라이스-토르 전에서 73-74대륙 인원을 포기했던 것처럼 부족원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릿츠나 크로이센 같은 범 마에스트로 세력의 모멸적인 언플이 이어졌다. 만약 현실에서 저런 식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사실 적시든 허위 적시든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게임과 계정이라는 가면에 숨은 괴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싸울아비 세력 역시 남서 부족들의 든든한 우군은 아니었다. 싸울아비와 페이트-바이에른은 표면상 동맹이었지만, 한누리에 방어병력을 지원하거나, 그들의 적이었던 오유 연합과의 적설정을 강요하는 등 외교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비트라이스 역시 이러한 외교적 압박으로 인해 오유 연합과 적설정을 하기 이르렀는데, 물론 싸울 이유도 없는지라 오유 연합의 외교관인 프란세즈님과는 '이러이러해서 적설정은 하는데 쳐들어갈 생각은 없다'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이는 바이에른도 비슷했다)

바이에른 족장인 에페르샤님의 고민의 날이 이어졌다. 불리한 전쟁, 분산된 전력, 모멸적 발언, 외교적 압박. 게임은 분명 '즐거움'을 위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즐거움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바이에른의 존속은 더 이상 바이에른의 것이 아니었다. 바이에른이 하루하루 이어져간다면 즐거운 사람은 바이에른의 구성원이 아니라 (다른 약한 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바이에른에 대해 모멸적 언플을 할 수 있는 마에스트로의 수뇌부, 그리고 상전 놀이을 할 수 있는 싸울아비의 수뇌부 뿐이었겠지.

그렇게 바이에른은 이 전까지 전례 없는 '부족 해체'를 결정하게 된다. 1페이지 부족이 합병되거나 와해되는 경우야 흔치 않은 사례지만, 적어도 10위권 부족이 깔끔히 해체를 결정한 것은 부족전쟁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물론 바이에른은 큰 부족이었기 때문에 '아레나' '우새시' 같은 부족이 등장하여 몇몇 지역에서는 항전 하기도 하였지만, 평소 도시락 운운하며 별것아닌듯 취급했던 그들의 말과 달리 진압은 조직적이고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바이에른 총독 자리를 무책임하게 버려서 에페르샤님에게 빚이 있는 입장을 차치하고라도, 필자는 당시 에페르샤님의 결단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일반직장에서도차 당하지 않는 모멸과 압박을 받는 장난감이 되며 게임을 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동시에게 필자에게는 숙제가 남게 된다. 화 랑과 비트라이스가 nap을 체결한 이유는 비트라이스가 바이에른-한누리 전에 참전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위해 싸울아비의 아카데미가 비트라이스 같은 부족과 nap까지 맺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이에른의 해체는, 더 이상 한누리와 화랑이 비트라이스와 nap을 맺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연히 한누리는 바이에른의 해체 직후 비트라이스와의 nap체결 해지를 공표 해 왔다. 불행 중 다행인건, 필자가 앞에서 한누리와 nap 해지를 공표할 때 유예기간을 지킨 것 처럼 한누리 역시 비트라이스와의 nap 해지를 공표하며 유예기간을 지켜 준 것이다. 외교적인 절차를 지킨 것이 결과적으로 비트라이스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기의 시계의 분침이 다소 돌아갔더라도 위기는 위기였다. 바이에른의 일부 세력까지 흡수한 한누리에 대항하는 것은 어려웠고, 한누리와의 nap이 해지된다면 자연스럽게 화 랑과의 nap도 끊어지게 되면서 화 랑과도 교전을 해야 되는 상황도 예상되었다.

반면 비트라이스와 동맹이었던 페이트는 홀로 싸움을 지속하는 처지였던 터라 지원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거리는 1개 대륙 가량에 걸쳐 떨어져 있었고, 거기다가 페이트와의 관계는 '친구의 친구' 관계였지 바이에른처럼 인적 물적 교류가 있던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프로이센 연방 해체의 주역들이 있는 부족이었으니 내 자신부터 친근하게 느끼지 않았다. 외곽의 천년 신라는 제대로 된 체제조차 갖추지 못한 중소부족이었다. 당시 마에스트로와 nap을 맺으며 중립노선으로 선회한 프로이센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부족원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필자는 결과가 사실상 정해진 미래를 예상하고도, '결사항전'과 같은 유교적 가치를 위해 부족원을 희생시킬 정도로 잔인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던 와중에 눈에 보인 것은 싸울아비 세력의 남서 방면의 조직적 진출이었다. 싸울아비는 바이에른의 해체 직후, 주요 부족원들의 포섭에 열정적이었다. 평등한 세상의 흡수합병과 바이에른의 해체는, 남서방면에서 마에스트로와 싸울아비의 외교 대리전이 끝나고 (이미 양 부족의 할거양상이었던 북동방면 같이) 직접적인 세력 확장을 나서게 된 방아쇠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한 발 뒤쳐진 싸울아비로서는, 남서방면 진출에 더욱 목마른 상황이라 판단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고, 화 랑 부족에 빠르게 접촉했다. 그리고 비트라이스(백호)의 화 랑에의 흡수합병을 타진했다. 물론 한누리와의 전쟁에서 패전을 인정하고, 흡수합병 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일단은 바이에른 초대 총독으로서, 바이에른을 와해시키는데 기여한 부족 따위에 창병 한 마리도 기여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화 랑에서 거절했다면 눈물을 머금고라도 접선 했겠지만.. 다행히도 화 랑측의 회신은 긍정적이었다.

결국 비트라이스는 2010년 1월 경에, 화 랑에 흡수합병 되었고, 협상의 책임자로서 부족원들의 가입 작업을 돕기 위해 화 랑에 가입하였다. 만약 화 랑에서 계속 플레이를 했다면 남서방면의 간부 정도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떼를 쓰고, 조금 더 그들에게 신뢰를 주었다면 남서방면 지부장 정도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남서의 패권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였고, 그랬기 때문에 당시의 심경으로 '북서 부족의 앞잡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곧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위해 기초군사훈련에 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였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라는 자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게 '진홍의성흔' 으로서의 플레이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비트라이스의 구성원 상당수는 장기미접을 하거나 화 랑에의 가입을 포기하고 끝까지 홀로 항전(대표적으로 밧슈더카이엔 님.)하다가 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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